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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

베네수엘라 왜 무너졌는가?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경제

 

오늘 시간에는 베네수엘라의 부흥과 멸망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가장 잘 사는 부유한 국가였습니다.

 

사진출처 : 한국경제신문

 

그러나 최근에 베네수엘라는 2014년 유가 폭락 이후부터거대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현재는 나라 자체가 거의 파탄 수준으로 기아와 식량이 모자란 국가가 되었습니다. 경제난으로 인해 무려 국민의 10% 약 300만 명 이상이 해외로 살길을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2019년에는 정치적 혼란이 더욱 가중되어 정전과 약탈로 인해 치안까지도 위험해진 상태입니다. 여성들은 성매매 외에도 한국의 60년대처럼 머리카락까지 팔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볼리바르라는 인물과 통일 남미

베네수엘라는 북부 브라질 위에 붙어 있는 나라입니다. 베네수엘라의 풀네임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입니다. 볼리바르는 우리나라 사람은 잘 모르지만 남미에서는 우리나라의 이순신 + 광개토대왕 + 김구 정도 되는 인물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통일 남미의 꿈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났는데요 당시에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태어난 스페인의 귀족이었습니다. 10대 때 프랑스에 가서 유학을 했는데 당시가 어떤 시대였냐면 미국이 독립혁명을 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혁명 중이었는데요 그 당시 마음속으로 볼리바르는 남미를 미국처럼 전체 연합국 그랜드 콜롬비아를 만들어서 통일 남미를 만들겠다고 하는 원대한 꿈을 갖게 됩니다.

 

연전연승하는 볼리바르

그리고 실제로 볼리바르는 콜롬비아로 돌아와서 민중봉기를 일으킵니다. 특히 영국은 미국을 빼앗긴 후 남미에서 자신들의 식민지를 더 넓히기 위해서 볼리바르를 도와줍니다. 콜롬비아에서 봉기를 일으켜 성공한 후 그 이후 베네수엘라를 쳐들어가서 스페인과 싸워서 또 승리합니다. 그 이후 에콰도르, 페루를 먹고 볼리비아까지 진출합니다. 볼리비아는 당시 페루의 한 지방이었는데 볼리비아를 독립국으로 독립시킵니다. 그 당시 스페인은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였기에 남미에서 일어난 독립전쟁을 막을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통일 남미의 실패

결국 볼리바르는 그랑 콜롬비아의 꿈을 이룹니다. 페루에서는 대통령을 하고 통일된 남미를 만들기 위해 다시 베네수엘라로 올라옵니다. 그러나 각 지방에 있던 유력자들은 볼리바르가 모든 권력을 다 갖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미국과 같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데에 반대를 합니다. 사실 미국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요. 남북전쟁이 터진 것도 이와 같습니다. 

 

볼리바르는 아예 힘이 있을 때에 다 밀어버렸어야 했는데 3년간 질질 끌다가 결국에는 정치적으로 패배합니다. 만약 이때 그랑 콜롬비아가 이루어졌다면 아마 남미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 겁니다. 결국은 지방의 호족들을 중심으로 다시 다 분리독립을 하며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칠레 아르헨티나 등으로 쪼개지게 됩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남미 국가들이 볼리바르를 위대한 민족적 지도자로서 추종하고 있습니다.

 

자원의 저주와 베네수엘라

자원의 저주라는 말은 해당 국가에 자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제성장 자체가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너무나도 풍부한 자원에 비해서 국민소득이 낮은 아프리카 국가들, 러시아 , 인도네시아, 그리고 베네수엘라인데요. 자원의 저주는 이런 제3세계 국가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에서도 일어났었습니다. 1950년대 말에 북해에서 거대한 천연가수 유전을 발견했던 네덜란드는 자신들의 통화가치가 상승하고 제조업이 붕괴하며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너진 제조업을 회복하는데 무려 30년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오일머니로 쉽게 돈을 벌었던 탓에 석유산업 외에는 다른 산업들이 육성하지 못했습니다. 기술개발이나 혁신의지 없이 국가는 돈을 벌었지만 정작 국민들이 더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경제의 석유의존도가 크다 보니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국제유가와 함께 갔습니다. 

 

석유와 함께 가는 베네수엘라의 경제

베네수엘라는 1910년대에 석유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국제 유가는 그렇게 비싸지 않았었기에 베네수엘라의 경 제어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1950년대 말 반공주의 군사 세력이 시민혁명으로 붕괴하고서부터는 정치적으로도 비교적 민주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토지 개 개혁 석유의 국유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맘때쯤 1970년대 오일쇼크가 왔습니다. 전 세계에게는 어마어마한 악영향을 준 오일쇼크였지만 베네수엘라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호재였습니다. 석유 국유화 이후 베네수엘라 경제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었고, 1인당 GDP가 남미에서 가장 높을 만큼 부자나라였습니다. 이시절에는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파리까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콩코드가 운행될 정도로 경제적인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몇 년 가지 않았습니다. 국제 석유값은 다시 폭락하였고 이때 만들었던 외채규모가 350억 불이었는데 이것을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IMF 체제로 돌입하게 됩니다.

 

IMF체제와 차베스 정권

베네수엘라는 1993년에 IMF가 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IMF발 경제 정책을 요구합니다. 기존의 국영기업을 민영화시키게 됩니다. 석유 또한 민영화의 대상이었죠. 기존까지 공공요금의 가격을 통제해왔는데, IMF의 주도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들이닥치니 베네수엘라의 모든 물가가 상승합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살기가 너무 힘들어집니다. 우리나라도 대우나 외환은행 같은 훌륭한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헐값에 팔려 나가고 수조 원씩 뜯겼던 것처럼 외국의 자본들이 들어와서 베네수엘라를 소위 말해 헤쳐먹기 시작합니다. 국민들의 삶은 어려워지고 이에 대한 반발이 점점 더 커지는 이런 와중에 베네수엘라의 현대사를 결정짓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차베스라는 사람입니다. 차베스는 90년도 초반에 쿠데타를 기획했다가 실패하여 감옥살이를 하는데요. 이때 국민의 성원을 받고 2년 뒤 사면을 받습니다. 한국에서는 좌파와 반미의 선봉장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차베스는 취임하자마자  IMF 체계 때 민영화되었던 원유와 철강산업을 다시금 국유화합니다. 

 

이때 타이밍이 결정적이었던 것이 1998년인데 이 이후로 이라크 전쟁 이후 고유가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특히 석유 국유화 조치로서 전 세계 석유 매장량 1위의 베네수엘라는 다시금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때 벌게 된 돈을 다시금 국민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지요. 아직도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의 인기는 높습니다. 

 

차베스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자였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IMF 체계 그리고 신자유주의 체제에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을 정치적 밑바탕으로 당선까지 될 수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러한 자신의 사상을 거리낌 없이 내비치며 미국과 적대시했을 수 있었던 것은 99년 말부터 2012년까지 유가가 떡상을 했기 때문입니다. 

 

차베스가 죽은 뒤 마두로의 시대 

가장 유가가 비쌌던 2012년에 정권을 이양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2012년 이후부터 국제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셰일 가스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2019/09/14 - [주가의 역사] - 부잣집에 기름이 터졌어요! 미국 셰일가스 혁명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던 유가가 셰일가스로 인한 공급 그리고 사우디와의 유가 치킨게임에 의해 30 불선까지 유가가 떨어집니다.  이러한 유가 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나라 경제가 폭망 합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게 마두로 대통령은 정말 안 좋은 시기에 대통령이 된 거지요 순식간에 나라의 역적이 되게 됩니다. 2013년에는 1.3%의 경제성장에서 2018년에는 -18%를 하게 됩니다.

 

국내 총생산이 3341억 달러 하는 것이 963억 달러로 변했습니다. 물가상승률은 2018년에 1,300,000%가 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물가상승률입니다. 환율은 1달러당 17 볼리바르였는데 현재는 24만 볼리바르가 됩니다. 수입이 되지 않으니 국민들의 몸무게가 줄어들고 약을 수입하지 못하니 말라리아까지 창궐합니다.  

 

기존에 미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으니 국제적인 도움을 구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 베네수엘라의 마두로는 미국과 단교를 선언합니다. 최근에 베네수엘라는 한나라에 대통령이 두 명이 되는 혼돈까지 벌어집니다.

도저히 나라가 회생할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가 망한 이유는 무분별한 복지 남용이다?

차베스는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빈민층에게 무상교육 무상의료 임대주택 등을 베푸는 복지정책과 적극적인 정부의 시장개입을 통해 빈민율을 줄였으며 이로 인해 선거 때마다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빈민 중심의 정책은 포퓰리즘으로 아직까지도 많은 비판과 논쟁거리에 휩싸여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정책을 남발하면 차베스 정권을 이야기하며 베네수엘라 꼴 이난 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은 복지정책보다는 국제유가의 영향력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의 가장 큰 실책은 바로 자원 의존적인 경제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국제유가라는 것은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는데 국제유가가 올랐을 때 미래를 대비하여 유류 중심 경제를 다른 산업 육성에 투자했어야 하는데 베네수엘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 규모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서는 정도의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다시 국제 유가는 반등 중인데 베네수엘라의 경제도 다시 회생하여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이 없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