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성장
동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는 부정하고 싶지만 일본일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경제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국토를 피해받지 않았던 미국과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폐허로 변해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무너진 세계에서 일본 또한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미군정을 거쳐서 1950년대부터 일본은 한국전쟁의 특수를 누리면서 경제성장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의 군수조달 산업의 부흥으로 1955년에는 일본이 가장 강력했던 1941년만큼 경제력을 회복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하여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첫 20년 동안의 성장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연평균 10%의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경제규모가 커졌습니다. 1인당 GDP 성장률 또한 엄청 올라갔습니다. 특히 오일쇼크, 자동차 수입쿼터제에도 불구하고 1973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의 GDP는 연평균 4.5%라는 건실한 규모로 성장해서 경제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1인당 GDP는 미국의 80%에 육박할 정도였습니다.
미국 시민들이 교도소, 국방, 금융중개, 의료보험제도, 변호사 등에 써야만 하는 돈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인 1인당 일본의 GDP는 미국과 비슷할 정도입니다. 일본이 유지한 성장률은 세계 최고의 성장률이었습니다. 한국이나 대만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 역시 일본의 성공을 벤치마킹하였습니다.
일본은 맨땅에 헤딩한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이나 중국은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다가 문맹률도 높은 전근대적인 국가였던 반면에 일본은 이미 19세기에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해서 문호를 개방한 후 교역이 압박당하자, 정부 주도 아래 산업화를 시작했습니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의 국가들의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일본은 이를 통해 몇 안 되는 참담한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은 국가에 속할 수 있었습니다. 부유한 나라와 강력한 군대를 이루기 위해서 대포와 총기를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일본의 영재들을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서 선진 기술과 산업들, 이념과 철학까지 배운 뒤 모국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 러일전쟁 이후에 이들의 메이지유신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전 세계가 알 수 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본의 핵심산업 역량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미국의 보호와 묵인아래 성장할 수 있었다
냉전이 시작되고 중국이 공산화되자 동아시아 전부가 공산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미국은 일본을 부유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로서 공산화가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종 생각이 드는 것은 미국이 반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던 나라들은 경제발전에 성공한 케이스가 많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서독,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 대만이 있었지요.
미국의 일본산업 성장을 미국은 견제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일본 수출품이 미국 공업의 경쟁자가 되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경공업인 피츠버그에 이어서 자동차산업 디트로이트를 붕괴시키고 첨단 반도체 실리콘밸리까지 위협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수출을 용인해주었습니다. 미국이 일본 시장을 개방시키고 자국 시장 보호하지 않았던 이유는 냉전의 전략적 군사적인 이유가 주된 이유였습니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부유하면서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을 맺은 국가가 되어야 했습니다. 대공황 이후부터 시작된 자유무역에 대한 요구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세계무역 폐쇄가 불황의 주된 원인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것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 정치 경제 문화 자원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힘을 가진 슈퍼파워 그 자체였습니다. 무역개방과 자유무역은 세계를 번영과 민주주의로 이끄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있어서 과거 러스트 벨트 지역의 제조업은 더 이상 미국의 미래산업이 될만한 고부가가 가치 산업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금융업으로 갈아타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주된 경제 성장은 일본 정부의 다음과 같은 정책들을 토대로 이루었습니다.
첫 번째. 보호무역주의
일본은 비관세 장벽과 사회적 장벽을 촘촘하게 만들어서 보호주의 수출 중심의 무역을 펼쳤습니다. 자동차 산업 하나만 보더라도 일본이 얼마나 보호무역 주의를 펼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미국이나 독일의 포드 폭스바겐과 비교해서 비참한 성능의 자동차들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그 당시에도 수입자동차가 거리에 없었습니다. 전쟁 이후 40년 동안 떨어지는 성능에도 불구하고 거의 수입자동차가 없었습니다. 일본은 10대 수출 산업 가운데에서 단 한 분야에서도 수입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교역 방식 자체가 일본은 외국산 상품뿐만 아니라 외국기업이 들어오는 것도 차단했습니다. 1988년까지도 외국계 기업들은 일본에서 산업생산량의 1%가량만 차지했던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30% 독일에서는 25% 미국에서는 12%를 차지했습니다. 해외 수입품과 해외 기업의 일본 내 생산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던 도요타나 캐논 같은 기업들이 곧 세계 수준으로 성장해서 국제시장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게이레쓰 시스템
기업지배권과 특혜적 기업관계를 연동시키는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의 재벌구조와 같은 구조입니다. 예를 들면 미쓰비시 그룹 같은 경우에는 은행 보험 부동산 무역, 유통, 철강, 해운, 자동차, 중공업과 같은 거의 모든 구조를 가졌습니다. 미쓰비시 그룹은 작은 나라의 GDP와 맞먹는 매출을 올렸지요. 이러한 재벌구조는 자기네 식구 회사에게 자금지원과 기술지원을 하여 산업 역량을 키우고 다시금 그 회사들이 내부의 매출을 올려주는 형태의 강력한 보호주의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유능한 정부 관료
일본의 산업정책관료들은 비교적 청렴하게 정부 주도의 산업을 이끌었습니다. 일본의 산업정책을 운영하기 위해서 상당히 유능한 관료들이 필요했습니다. 미국의 관료들이 삭막하고 무료한 공무원들을 떠올리는 반면에 일본은 최우수 엘리트들만이 관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능력위주의 채용에 부패가 많지 않았으며 급여 또한 나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늘어났습니다. 고위 관료들은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들이었으며 재량권 안에서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이 많았습니다. 일본의 관료들은 구체적인 법률과 규정 들을 지키면서 국가 기간산업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도록 촉진시켜 주었습니다.
네 번째 금융시스템
높은 저축률과 낮은 이자율을 유지해서 자본을 저리로 목표한 산업에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고도성장기간 동안 GDP 평균 30% 정도의 높은 저축률을 유지했습니다. 총 고정 투자율은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현금 수납함이었던 우편저금 제도는 자본을 공공사업뿐만 아니라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금융정책의 목표는 저축의 흐름을 부동산에서 제조업 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축에 대한 이자소득을 낮추자 저축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저축을 하는 국민들이었습니다. 높은 이율을 찾아서 해외 금융에 저축하는 행위는 정책적으로 억제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양질의 교육과 숙련된 기술자들이 많았고, 일본 문화의 특수성에 따라서 낮은 범죄율과 말잘듣는 국민들, 낮은 군비지출과 꼼꼼함 책임문화, 사회 동질성들 또한 일본의 경제기적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어떠한 요소들이 숫자적으로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일본의 경제성장을 견인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위에 다루어 본 정부 주도의 성장은 1955년부터 1990년까지 폭발적인 고도성장에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레이건 대통령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버블 형성과 붕괴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일본이 골라가게 된 이유는 아래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9/09/14 - [오늘의 경제] -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원인과 결과 극복은 잘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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