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
중국은 일본이나 대한민국의 정부 주도 계획의 모델을 극한까지 적용시킨 나라입니다. 중국은 높은 저축률과 저축 이자율을 낮게 가져가면서 적은 수입과 무역흑자를 내는 체제를 선택했습니다.
2019/11/11 - [오늘의 경제] - 국가 주도 경제개발과 동아시아 경제발전
바로 일본과 대한민국의 성장 경제 모델입니다. 정부주도의 경제개발과 보호무역이 보여주었던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중국 내 투자는 GDP의 50%까지 증가했습니다. 고도성장 시기의 일본보다도 더 높은 수치였습니다. 일본과 비슷하게 높은 저축률도 한 몫했습니다. 수출은 GDP의 30%까지 증가했습니다. 소비는 GDP의 34%까지 억제되었습니다.
가난한 소작농의 나라 중국
중국은 일본과 다른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이미 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강력한 산업기반을 갖추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미 오랫동안 숙련된 사람들은 높은 교육 수준과 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비참할 정도로 가난한 소작농들만이 존재하는 국가였고, 문맹률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거기다가 1950년대 마오쩌둥의 문화 대혁명은 그러한 중국을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덩샤오핑 시대에 들어와서부터 중국은 발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념에 묶이는 것보다 경제 발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양이의 색깔이 문제가 아니라 쥐를 잡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실용주의에 입각한 중국 발전을 꿈꾸었습니다. 그가 모험을 감수하고 1970년대 말 개혁을 시작한 이래 중국의 경제성장은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초기의 개혁 속도는 상당히 느렸습니다. 제한된 지역에서 통제 가능한 정도로 진행된 경제 실험이었기 때문에 중국 전체로 확산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개혁이 어느수준까지 진행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해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구소련을 길도 아니고 북한처럼 독재 개인숭배 체제로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은 급성장을 이룬 일본의 모델로 가고자 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였고 이러한 체제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낳게 되었습니다.
농업개혁의 성공
개혁은 1978년 아직까지 전체 인구의 3/4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집단농장들을 해체시켰습니다. 농민들은 농장들을 아주 긴 기간 임대 형식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관개사업, 배수, 사육, 장비 등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였습니다. 국가에 일정 금액만큼 팔아야 하는 양을 채우고 나면, 그 이상의 잉여생산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시장 가격으로 파는 것을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농업생산량은 급등했습니다. 해마다 5%씩 증가해서 1995년에는 농업개혁 전보다 2배의 생산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농업 종사인력은 전체 인구의 1/2까지 떨어졌습니다. 농민들은 마오쩌둥 시대보다 3배는 더 잘살게 되었게 되었고 덩샤오핑과 그 이후의 지도자들에게 큰 신뢰와 지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의 농업집단화와 마오쩌둥의 농업집단화는 모두 농업생산물을 국가가 통제하고 그로 나온 수익을 다른 사업에 사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낮은 생산성에 수많은 노동력이 묶여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출만이 답이다
사람들을 농업에서 공업으로 옮겼는데 어떠한 사람들이 이들이 생산한 제품을 살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중국의 국내 수요는 소비력이 낮았기에 적었으며 오직 수출만이 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중국인들에게 기술과 노하우 해외시장 진출을 알려주었을까가 문제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중국은 가장 큰 변화를 해내었습니다. 바로 중국의 경제를 외국 기업들에게 개방하고 심지어 환영까지 했던 것입니다. 외국기업들은 중국에 기술과 노하우 해외시장의 접근성을 허용하면서 자본까지 들여왔습니다. 엄청난 규제와 감독은 있었지만 외국에게 중국의 거대한 시장은 너무나도 달콤했습니다.
중국시장 해외개방
중국은 아주 조심스럽게 한정된 지역부터 특별경제구역으로서 해외자본을 개방했습니다. 과거 아편전쟁으로 뼈아프게 개방하면서 이권을 해외 열강에게 내주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중국의 토착기업들은 외부세계를 위해서 어떤 것을 어느 수준으로 만들어야 할지도 몰랐고 중국이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고 제품 판매를 하는 데에도 능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외자본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홍콩 출신의 기업인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홍콩에서 온 기업인들이 경공업 위주의 공장들을 세우자 정부가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고 유지했습니다. 홍콩 사람들은 광둥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중국 본토와 혈연관계가 많이 있어서 홍콩인들에게 중국의 경제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부담이 적었습니다.
중국 기술력의 진보
중국이 외국의 기업을 들여올때 기술이전이라는 조항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중국 수출의 60% 이상은 중국 내의 외국 투자기업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외국기업들은 중국기업이 기술적 발전을 이루는데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반도체, 태양전지, 배터리, 고속열차 등과 같은 큰 규모의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고속성장에서는 외국기업을 배제한 채 자국의 기업으로만 성장했던 반면에 중국은 외국기업들에게 더욱 우호적으로 초청해서 자신들의 목적에 활용했습니다.
중국이 해외자본을 필요로한 시기는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국내 저축률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외국의 기술이었습니다. 2010년대까지도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 판매하려면 중국기업들을 파트너로 삼아야 하는 것이 의무였습니다. 중국 파트너는 외국기업에게 각종 정부 허가와 꽌시 같은 요소들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기술과 노하우를 중국에 이전되도록 하였습니다.
기술이전으로 중국은 외국에서 보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술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뭐 아무리 주변에서 짝퉁이라고 욕을 해봤자 기술이 발전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과거 미국에서도 영국의 방직기 기술을 훔치기 위해서 산업스파이를 보냈었고, 프랑스에서도 르네상스 시기에 중국의 도자기 기술을 몰래 밀수해왔습니다. 그런 식으로 역사가 흘러왔습니다.
이제는 광전지 모듈이나 태양광 패널, LED 생산과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아닌 기술과 자본 집약적인 산업까지도 중국에서 생산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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